온조, 역사 속 숨겨진 이야기 떡밥 공개!

백제를 건국한 고구려의 왕자 온조(역사만화 7화) [공부왕찐천재]
온조에 대한 흥미로운 떡밥 소개(문헌적인 측면에서)

온조라는 이름, 익숙하죠? 바로 백제의 시조로 알려진 인물이죠. 역사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이지만, 사실 온조에 대한 기록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오늘은 온조에 대한 흥미로운 떡밥들을 문헌적인 측면에서 파헤쳐 보려고 해요.

1. 온조는 실존 인물일까?

온조가 실존 인물이었는지 여부는 역사학계에서 끊임없이 논쟁되는 주제예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는 온조를 고조선의 마지막 왕 준왕의 손자이자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아들로 소개하며,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뒤 온조는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했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하지만 온조에 대한 기록은 이 두 역사서에만 등장하고, 다른 고대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요. 게다가 온조가 주몽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부족해요. 일부 학자들은 온조가 실존 인물이었지만, 주몽과의 관계는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주장하기도 해요.

EVA
Entity: 온조
Attribute: 실존 여부
Value: 논쟁 중

ERE
Entity: 온조
Relation: 후손
Entity: 주몽

Semantic Triple
Subject: 온조
Predicate: 실존 여부
Object: 논쟁 중

2. 백제 건국의 실체는?

삼국사기에서는 온조가 위례성에서 백제를 건국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위례성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어요. 일부 학자들은 위례성이 현재의 서울 송파구에 위치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하남이나 광주 등 다른 지역을 위례성 후보지로 제시하고 있어요.

백제 건국 시기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해요. 삼국사기에서는 기원전 18년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토대로 기원후 1세기 전후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많아요.

EVA
Entity: 백제
Attribute: 건국 시기
Value: 기원전 18년 (삼국사기 기록), 기원후 1세기 전후 (고고학적 추정)

ERE
Entity: 온조
Relation: 건국
Entity: 백제

Semantic Triple
Subject: 백제
Predicate: 건국 장소
Object: 위례성 (정확한 위치 논쟁 중)

3. 온조와 비류의 관계는?

온조와 함께 백제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비류예요. 온조와 비류는 형제로, 온조가 백제를 건국한 후 비류는 미추홀 (현재의 인천 지역)에 미추홀국을 세웠다고 전해져요.

미추홀국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만 등장하며, 실제 존재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아요. 일부 학자들은 미추홀국이 백제의 초기 세력 중 하나였으며, 온조와 비류가 서로 다른 지역을 기반으로 세력을 형성했다고 주장하기도 해요.

온조와 비류가 형제였는지, 그리고 미추홀국이 실제 존재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어요. 온조와 비류의 관계는 백제 건국 신화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지만,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기는 어려워 보여요.

EVA
Entity: 비류
Attribute: 미추홀국 건국
Value: 삼국사기 기록, 실존 여부 논쟁 중

ERE
Entity: 온조
Relation: 형제
Entity: 비류

Semantic Triple
Subject: 미추홀국
Predicate: 실존 여부
Object: 불확실

4. 온조, 백제의 시조를 넘어서

온조는 백제의 시조로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아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몇 안 되는 기록을 통해 온조의 삶과 업적을 추측해 볼 수밖에 없어요.

온조에 대한 흥미로운 떡밥들은 우리에게 백제 건국 신화와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줘요. 온조가 실존 인물이었는지, 백제는 어떻게 건국되었는지, 온조와 비류의 관계는 어떠했는지 등 온조를 둘러싼 미스터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여요.

온조에 대한 연구는 백제의 역사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의 신화와 전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할 수 있을 거예요.

FAQ

Q. 온조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나요?

A. 온조에 대한 기록은 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두 역사서 모두 온조를 백제의 시조로 소개하며, 백제 건국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요.

Q. 온조는 실제로 백제를 건국했을까요?

A. 온조가 백제를 건국했는지 여부는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어요. 삼국사기에서는 온조가 백제를 건국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온조에 대한 기록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온조가 실존 인물이었는지조차 의심하기도 해요.

Q. 온조와 비류의 관계는 어떠했나요?

A. 온조와 비류는 형제로 알려져 있으며, 온조가 백제를 건국한 후 비류는 미추홀에 미추홀국을 세웠다고 전해져요. 하지만 미추홀국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만 등장하며, 실제 존재했는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아요.

Q. 온조에 대한 연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A. 온조에 대한 연구는 백제의 역사를 더욱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의 신화와 전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할 수 있을 거예요. 온조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넓혀줄 수 있을 거예요.

백제를 건국한 고구려의 왕자 온조(역사만화 7화) [공부왕찐천재]
백제를 건국한 고구려의 왕자 온조(역사만화 7화) [공부왕찐천재]

1. 온조 이야기


 이번에는 문헌을 주격으로 다음에는 고고학을 주격으로 삼을 생각임. 

우선 내가 책 여러 권 읽고 생각한 결론은 온조를 믿는 것은 신앙에 가깝다고 생각함. 나는 온조가 실존한다고 믿는다. 근데 온조가 실존했다는 근거는 딱히 없다.

 이거는 온조 집단을 긍정한 책들 위주로 읽었음에도 온조가 실존했다고 믿기 어려운 게 많은 기록들은 오히려 온조한테 독이 되고 고고학이 온조의 존재를 계속해서 부인하는 느낌이 든다. 나머지는 비류임. 

1-1. 이 글의 특징과 알아야하는 점

 피드백 받아들여서 글 짧게 쓴다고 했고 이렇기에 고고학과 비류는 나눠 적기로 했는데 이게 쓰다보니 너무 길게 됐다. 나눠서 읽으면 될 듯.

 이 글의 특징으로는 학설이라고 소개는 했는데 사실 학설보다는 그냥 내가 백제 책이랑 신화 책 내 ㅈ대로 섞은 견해다. 또한 온조에 대한 학설은 정답이 없다.  

 이렇기에 댓글로 네 주장은 틀렸다라고 주장하는 건 별로 받고 싶지 않은데 만약 내가 사실 자체를 왜곡했다면 마땅히 비판 받아야겠지만 학설 자체로 비판 받는 건 부당함. 온조 관련은 ㄹㅇ 답이 없기 때문

 마지막으로 나는 일단 온조가 실존한다고 전제하는 책들을 더 많이 읽었고 그쪽 관련 논문들도 봤다. 그런데 결론은 역사적 온조는 실존하지 않는다. 

2. 기록이 가장 많으면서 가장 적은 왕

 온조의 실존 여부에 대해 넷상 여러 글들은 고고학 vs 문헌 이런 식으로 설명하려는 글들을 많이 봤음. 그러한 접근 방법은 좋은 방법이지만 문헌 vs 다른 문헌으로 고찰한 글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삼국사기 온조의 대표적인 기록을 보면 마한 정복, 정치, 동명왕 사당, 하남 위례성임

여기서 마한 정복은 확실히 후대의 일이기 때문에 거르고 정치적인 문제도 후대 백제와 유사한 부분이 많아 온조대로 안보는 게 맞음. 애초 온조 실존 여부도 불분명한 판국에 이러한 게 나오는 것도 좀 그렇지.

 하남 위례성 천도 같은 경우에도 하남 위례성을 풍납토성으로 보는 견해를 채택하면 애초 천도 같은 거 없이 하남 위례성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고 발굴 조사로 인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동명은 아래에 서술

 삼국사기 온조 기사를 보면 사실상 죄다 후대 범벅이고 온조 당대에 했다는 기록은 전무한 실정이라 기록 많은 게 의미가 없음. 

 또한 백제 관련 기록에서도 온조는 안 나온다. 실제로 동명묘와 우태묘는 있는데 온조묘와 비류묘는 없다. 이거에 대해 삼국사기를 보면 온조가 동명왕 사당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구태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또 온조가 ㄹㅇ 내려온 실질적인 시조라면 온조묘가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는데 백제 기록 보면 구태묘가 있지. 온조묘는 없다.

 당장 일본 기록에서도 부여 계통을 말하고 있음. 이는 고구려에서 나왔다는 온조 설화랑은 정면으로 배치되고 중국 기록에서도 구태는 있어도 온조는 없음. 이렇기에 온조라는 인물 자체가 백제 멸망 이후에 나왔을 가능성도 완벽히 배제하기는 힘듦. 

 그니깐 온조 기록은 후대에 소급 된 티가 너무 많이 나는 것도 문제인데 당대 외국 기록으로 살펴봐도 온조는 없고 개로왕의 국서 등등 여러 사료를 봐도 온조라는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음. 신찬성씨록에서도 속고왕과 귀수왕은 있어도 온조는 없다. 신찬성씨록은 일본에 살던 백제 왕족의 후예들에 관한 계보를 기록하고 있기에 백제사에서 중요한 자료인데 없어. 

 이 정도면 당대 백제인들이 온조를 알았는가로 넘어가야함. 

3. 신화로 보는 온조의 실존 여부

※ 중국 신화

 온조가 비류와 같이 내려왔다고 한다. 고고학적으로 봤을 때 온조 집단이 고구려에서 내려온 것은 사실로 보임. 이쪽 내용은 고고학쪽에서 다루겠음. 그런데 이러한 온조 신화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 삼황오제를 비롯해 신화적인 인물이 부인되는 대표적인 논리 중 하나가 오래 될수록 후대 역사서에 나타나는 경향을 보임. 그니깐 보통 찐으로 오래됐다면 이미 진작에 나왔어야 하는데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가 길어진다. 이건 실존했다는 증거가 아닌 후대로 갈수록 윤색이 들어갔다고 봐야함.

 이건 온조도 동일함. 삼국사기 기록에 보면 백제 건국 년도를 기원전 18년으로 지목하고 있으나 이건 온조 긍정하는 쪽에서도 부인 됨. 왜냐면 고고학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임. 

 기록상 온조라는 이름이 나온 시대가 고려 시대인데 중국 요순과 마찬가지로 후대로 갈수록 백제의 역사도 길어지고 있기 때문임.

 기원전 18년이면 토광묘 세력이 들어오기 몇백년전인데 이 당시 온조가 나라를 세우고 기틀을 잡았다? 심지어 그 정도 대업적을 이룩한 왕이 업적은 죄다 후대 왕 업적이고 묘도 제대로 없고 당대 기록으로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건 온조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의문이 들게 만든다. 

 온조=구태를 주장하는 학설이 있긴 한데 주류는 아닌 걸로 기억함. 오히려 위구태나 고이왕을 구태로 보는 견해가 더 강할걸. 구태 나온 중국 사서가 백제 건국되고 좀 뒤 시점이라 구태를 중시조로 보는 시각도 제시됨. 근데 구태가 시조가 아니라 중시조라고 쳐도 그게 온조가 존재한다로 이어지는 건 아님. 

※ 고구려 출자설도 후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 

 일단 근본적인 문제점은 고구려와 백제가 사이가 안좋은데 고구려 출자설이 백제 당대에 있을 지는 알 수 없다는 거임. 구삼국사가 백제 멸망인데 정치적인 목적이 들어가서 백제와 고구려가 한 가족이라고 표현했다는 가설이 제기 됐고 내가 지지하는 학설임.

 백제 초기부터 고구려 출자설을 주장했을 거 같지는 않음. 왜냐면 백제 역사를 문자로 적은 시기가 근초고왕이고 그 전에는 구비전승일텐데 구비전승은 시간 지나면서 왜곡도 심하고 소실된 것들도 많았을 거임. 결정적으로 근초고왕은 고구려와 전쟁을 한 왕이기 때문에 근초고왕 시기에 편찬된 사기를 봐도 고구려 출자설이 나올 가능성은 적다고 보임. 

 당장 당대 백제인들이 하는 소리들 기록 싸그리 모아보면 고구려가 아닌 부여출자설을 주장하고 있음. 생각해보면 당연한거지. 적국인 고구려에서 나왔어요라고 주장할 이유는 없는데 온조 설화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근초고 이후 백제 역사를 보면 계속 고구려와 대립했기에 고구려 출자설 주장할 이유 없다. 영양왕 때 마지막으로 백제 치고 영류왕 시기부터 자제하고 개소문 시기에 개소문이 대신라강경책 펼치면서 의자왕과 합이 잘 맞았으나 문제는 의자는 백제 마지막왕이라는 점이다. 

 온조 실존을 긍정하는 쪽도 실질적인 시조는 다 다른 왕으로 봄. 고이왕 비류왕 근초고 등등으로 보고 있으며 삼국사기 온조 내용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우는 거의 못봄. 식민사학 극복하겠다고 백제 년도 끌어올린 것도 기원전까지 안감 


 이건 순수 내 뇌피셜인데 아마 부여출자 주장한 이유도 고고학적인 이유보다는 그냥 고구려와 대등하다고 알리고 싶어서 그런 거 같다. 부여출자는 당시 백제 배경을 보면 이유라도 있는 거 같은데 고구려는 ㄹㅇ 이유 없다. 

※ 주몽의 아들은 아닐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온조 비류 형제를 잘 살펴보자. 주몽의 아들이라는 것은 현재 거짓이 거의 확실해보인다. 온조 비류 이야기는 고구려 기록에 없다. 아니 심지어 유리명왕 역시도 주몽의 아들이 아니라는 설이 다수의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미 제기 된 문제다. 이러한 점은 “고구려 초기 정치사 연구”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주몽을 비롯한 고구려 1~5대왕은 허구 인물이라는 설이 제시되고 있고 백제와 마찬가지로 고구려 초기 왕들이 실존했다고 쳐도 왕위계승은 윤색됐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6대 태조대왕 시절에 다시 형제계승으로 돌아가는데 기록으로 따지면 고구려 1~5대는 부자인 반면 갑자기 6대 들어서 퇴화할 이유가 없기 때문

 이렇기에 고구려 1~5대는 영웅적 왕자관에 입각했다고 보고 있음. 지금 발전한 사학계에서는 유리명왕이 ㄹㅇ 주몽 아들인가부터 부정되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 기록에 나오지 않는 온조 비류를 주몽의 아들로 보기 어렵다. 

 설화에서는 부자계승이 강조되어 있는데 그건 오히려 후대에 윤색된 이야기라는 결정적인 증거

 또 삼국사기에 온조 업적이 몰려있다는 점에서 백제인들한테 중요하게 인식된다 이런 것도 봤는데 백제인들이 중요하게 인식했다면 왜 묘는 안 만들어주고 왜 일언반구 언급도 안되는지… 멸망 후 온조 설화가 만들어지면서 소급 된 게 아닐까 싶다. 

결정적으로 온조가 실존했다면 대체 몇 세기 사람임? 

 이거 고고학 이야기인데 2021년에 권오영 교수님도 이걸 지적했는데 21세기에 급증한 고고학 성과 덕분에 백제 국가형성에서 삼국사기의 가치보다 삼국지의 가치가 더 높은 게 판명됐고 따라서 기원전 18년 부여 고구려 이주민인 온조에 의해 백제가 건국 되었다는 과거의 믿음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고 강력한 일침 날리셨다. 

 백제는 소수의 건국자들에 의해 주도된 게 아니라 여러 정치체 사이에서 전개된 것임을 인정해야함. 

여기 논문에서는 온조라는 개인 주체에 의해 건국된 게 아니라는 건 상식을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한다라고 표현

-진짜 알려지지 않은 사실

 설화 어그로 끌려서 그러는데 보통 백제 건국 설명할 때 고고학 증거로 고구려에서 내려온 애들이 세웠다고 주장하는데 이거 정설 아니다. 물론 나는 고구려에서 내려왔다고 보는 입장인데 물증이 그렇게 충분하지 않다.

 백제는 본인들이 부여에서 기원했다고 하는데 고구려도 물증 부족한 판국에 부여는 더더욱 부족하다. ㄹㅇ 만약에 고구려에서 내려온 애들이 주격도 아니라면 온조 설화 관련 내용은 그냥 맞는 게 단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는 온조의 실존 여부를 또 다시 의심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 중국 하나라는 실존합니까? 

 온조는 연구가 진행되면서 갈수록 그 진위여부가 부인되고 있다. 그 근거를 제출하겠다. 우선 위에 언급 된 풍납토성이 기원전 1세기에 건축됐다는 증거가 발견됐다고 온조도 있다는 내로남불이다.

 이것이 왜 내로남불이냐면 중국이 주장하는 단대공정을 보자. 사실 상나라 이전에 중국이 적어도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고고학 증거는 확실하다. 얼리터우도 실존하며 그 가치는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라가 확정되지 않은 이유는 그 유적이 하나라라는 증거가 없다.

 마찬가지로 100% 확실한 팩트는 백제 유역에 많은 애들이 내려왔다는 점이다. 이렇기에 풍납토성이 기원전 1세기부터 건축됐다고 해도 그게 온조라는 증거는 없으며 백제가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풍납토성에 이거 온조가 세움 이정도 나오지 않는 이상 믿기 어렵다. 

 이렇기에 온조가 정치적인 목적을 강조하기 위해 후대에 나왔다고 생각한다. 

또 유리명왕 시기에 내려온 애들이 온조 집단이 아닌가라는 학설도 봤지만 근거 없다. 왜냐면 이것도 하나라의 사례처럼 그 집단이 온조 집단이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 논리라면 중국에서도 상나라 이전 문화 같은 게 발견되니 요 순도 긍정해야할 것이다. 만약 그러한 유적에 요 순이나 하나라에 대해 갑골문 같은 게 나오면 이들이 역사가 될 수 있지만 안나오잖아. 

※ 온조 다룰 때 주의해야 할 점

 만약 내가 하(夏)나라는 거짓이다. 얼리터우는 실존하지만 그게 우임금의 하나라라는 근거가 없으니 하나라는 실존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말했으면 공감 받을 것이다..

 요 순을 부정해도 한국 네티즌들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인다. 왜냐면 그것은 신화이기 때문임. 그런데 이상하게도 박혁거세, 김수로, 온조의 실존 여부를 의심하면 바로 선족이 취급 당하거나 사이비 역사학 퍼트리는 사람 취급 당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진지하게 온조를 실존 인물로 볼 근거가 충분한가? 역사 온조보다 신화적인 요소가 강조된 온조가 주격인 게 팩트이며 맞는 부분은 극히 적다. 내가 모든 온조 자료를 본 것은 아니지만 당장 온조 긍정하는 쪽에서도 온조 집단 이런 식으로 애매하게 설명함. 

 온조 실존한다고 주장하는 논리와 하나라 실존한다고 주장하는 논리가 그렇게까지 다르지 않다. 하나라 실존 논리가 일단 유적 발견됐으니 사실, 일단 기록(후대 기록)에 있으니 사실, 일단 중국에 사람 있었으니 사실 이런 논리다.

 온조도 풍납토성 기원전 1세기 흔적 있으니 사실, 일단 후대(당대 기록에 없지만) 기록에 있으니 사실, 일단 내려온 애가 온조라는 근거는 전혀 없지만 아무튼 온조임. 거기에다가 온조는 고구려 출자설이나 역사서인 삼국사기 기록들도 죄다 후대 왕 업적 온조한테 올인한 게 밝혀졌기 때문에 우 임금보다 더 불리함. 

 상나라나 낙랑 같은 경우에는 대놓고 갑골문, 낙랑이라고 적힌 유물 나와서 그 존재가 입증되었다. 이 정도 수준은 되어야 한다. 

4. 그렇지만 간과하면 안되는 점

 이런 신화적인 성향이 짙은 인물 토론할 때 나오는 무적의 논리가 하나 있음. 

어떤 인물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임. 

그니깐 온조 비류가 가상인물이라고 쳐도 그게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았을 거고 분명 애들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있을 거임.. 

 유리 이야기하자면 근초고왕 시기와 유리명왕 대 내려왔다고 추정한 애들이 동일집단인지도 의심스러운 상황임. 

 또 온조가 남하했다고 쳐도 기록 굳이 따지면 흘우 세력, 진씨 등등 여러 세력들이 혼합했으며 삼국사기 백제 초기 왕들의 나이가 비정상적임을 감안해보면 애들도 고구려처럼 100% 주작 있기에 온조 자체에 신빙성이 그렇게 높나 싶다.

그리고 또 고대사 시기 건국에 대해 오해하면 안되는 점은 어떤 인물이 오늘부터 00국을 건국한다라고 했다고 건국되는 것이 아니다. 애들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건국된다고 봐야 한다. 또 3세기 중엽까지 계속해서 내려왔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지. 

 거기에다가 몰락한 형 이름까지 나와있음. 심지어 고고학적으로 봤을 때 백제의 미추홀 진출은 아무리 아무리 빠르게 봐도 기원후임. 이쯤되면 온조 이야기 자체에 역사적 진실이 하나도 없는 수준…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게 확실하다. 

 그렇지만 유리명왕 시기 내려온 세력을 온조 세력이라고 부르는 건 ㄱㅊ다고 생각함. 편의상 네이밍하는 정도라고 보면 되지. 

6. 결론

 이제 결론을 내야 하는데 우선 내 입장은 이럼. 근데 이것도 정설은 아니다. 온조 자체가 워낙 미스테리하고 사실상 신화 속 인물이라 정설 같은 거 없음.

 우선 나는 적어도 온조 설화 자체는 백제 멸망 이후로 보고 있다.  왜냐면 온조가 당대 기록에 나오지도 않고 백제가 본인은 부여에서 나왔다고 확고히 주장했으며 또 타문헌이나 고고학적으로 맞는 부분이 진짜 거의 없기 때문임. 그리고 고구려에서 나왔다가 백제왕들이 주장할 수 있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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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에 대한 흥미로운 떡밥 소개(문헌적인 측면에서)

온조 이야기를 좀 더 깊이 있게 파헤쳐보고 싶어서 문헌을 꼼꼼히 살펴봤어요. 여러 책을 읽으면서 온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발견했는데, 사실 온조의 존재 자체를 믿기는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왜냐하면 온조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후대에 만들어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이 두 역사서가 한국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임은 분명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전설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아서 객관적인 사실만을 분리해내기가 어려워요. 특히 온조가 백제를 건국했다는 이야기는 고구려 건국 신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두 나라의 건국 신화를 서로 비교하며 분석하는 것이 중요해요.

예를 들어, 고구려 건국 신화에서는 주몽이 동명성왕이 되어 고구려를 건국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온조 이야기는 주몽의 아들인 온조가 백제를 건국하는 이야기로 이어져요. 두 신화는 모두 하늘의 뜻을 받아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고구려 건국 신화는 주몽이 천제의 아들로 묘사되는 반면, 온조는 주몽의 아들로 묘사되면서 고구려 건국 신화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는 점이 특징이에요.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온조가 실존 인물이었는지, 아니면 고구려 건국 신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전설인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온조 이야기를 통해 고대 한국 사회의 정치적 상황과 민족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앞으로는 고고학적인 증거를 통해 온조 이야기의 진실을 밝혀내는 연구를 계속해 나갈 계획이에요.

동맹과 국익 수미 테리와 로버트 김 사건

온조와 관련된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

온조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찾고 계시군요! 온조는 고구려 건국 신화의 주인공으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다만, 온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의 문헌에 주로 의존하고 있어, 실제 역사와 전설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온조가 주몽의 아들로, 백제를 건국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온조는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건국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를 이끌었던 중요한 국가였습니다.

삼국유사에서는 온조가 주몽의 아들이 아니라, 고구려의 왕이었던 고주몽의 아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온조는 고구려의 왕이 되려고 했지만, 고구려의 왕위 계승 문제로 인해 백제를 건국했다고 합니다.

온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며, 실제 역사와 전설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온조가 백제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분명하며,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와 함께 삼국시대를 이끌었던 중요한 국가였습니다.

온조와 관련된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전설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해 고대 한국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며, 삼국시대의 시작과 백제의 건국에 대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 『삼국사기』 백제 본기 온조왕 즉위 조 – 우리역사넷

백제 건국 이야기: 온조와 비류, 누구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울까요?

삼국사기 백제 본기 온조왕 즉위 조를 살펴보면 백제 건국 과정에 대한 두 가지 전승, 온조 전승과 비류 전승이 등장합니다. 이 중에서 온조 전승이 후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는 온조 전승이 비류 전승보다 건국 과정에 대한 내용이 더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내용의 풍부함만으로는 온조 전승이 후대에 만들어졌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온조 전승은 비류 전승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발전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의 기록은 당시 백제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여 온조를 더욱 부각시켰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온조 전승은 고구려 주몽의 아들 온조가 한강 유역에 백제를 건국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온조는 비류와 함께 남하하여 미추홀(인천)에 먼저 도읍을 정했지만, 땅이 척박하고 기후가 좋지 않아 위례성 (서울 풍납토성)으로 천도했습니다. 온조는 이곳에서 백성을 잘 다스리고 나라를 발전시켜 백제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전해집니다.

반면 비류 전승은 비류가 미추홀에 도읍을 정하고 소서노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비류는 백성을 다스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결국 멸망했다고 전해집니다.

삼국사기에서는 온조가 백제의 건국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비류 전승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비류는 백제의 시조로 추앙받는 온조와 달리 멸망한 왕으로 기록되지만, 역사 속에 잊혀지지 않고 온조와 함께 백제 건국의 주역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두 전승은 백제 건국 과정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동시에 백제인들이 온조를 통해 백제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했던 노력을 보여줍니다. 삼국사기는 온조 전승을 중심으로 백제의 역사를 기록했지만, 비류 전승 또한 백제 건국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두 전승을 통해 백제 건국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볼 수 있으며, 백제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백제/역사

물론 문헌만으로는 백제와 부여의 관계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살펴보면, 두 나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생각보다 희미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고고학적으로 볼 때, 백제와 부여는 서로 다른 문화적 특징을 보여줍니다. 백제는 남한의 중부 지역에 자리 잡고, 남방계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반면, 부여는 북한 지역에 위치하며 북방계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와 문화적 차이는 백제와 부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음을 암시합니다.

물론, 백제와 부여 사이에 어떤 형태의 교류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두 나라가 동시대에 존재했고, 서로 가까운 지역에 살았던 만큼, 무역이나 문화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만, 현재까지 발견된 고고학적 증거들은 백제와 부여가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뒷받침하지는 못합니다.

이처럼 백제와 부여의 관계는 문헌과 고고학적 증거 사이에서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발굴과 연구를 통해, 두 나라의 관계에 대한 더 명확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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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조 이야기: 역사 속 진실을 찾아 떠나는 여정

온조 이야기는 우리 역사 속에서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특히 온조가 백제를 건국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역사적 사실과 전설이 뒤섞여 있어 진실을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온조 이야기는 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고대 문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문헌들은 온조가 고구려의 주몽의 아들로 태어나 남쪽으로 내려와 백제를 건국했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록들은 온조의 삶과 백제 건국에 대한 정확한 증거를 제공하지 못합니다.

온조 이야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온조의 삶과 백제 건국에 대한 다양한 역사적 자료들을 분석해야 합니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 온조가 살았던 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되었지만, 이 유물들만으로는 온조의 삶과 백제 건국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온조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과 전설이 혼합된 이야기로, 온조의 삶과 백제 건국의 진실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미스터리는 우리 역사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며, 온조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고대 역사를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Bada는 해외 거주 한인 네트워크로, 한국어로 소통하며 한국 문화를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입니다. Bada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들이 서로 연결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Bada를 통해 온조 이야기와 같은 한국 역사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얻고, 다른 한인들과 함께 한국 문화를 탐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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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온조에 대한 흥미로운 떡밥 소개(문헌적인 측면에서)

백제를 건국한 고구려의 왕자 온조(역사만화 7화) [공부왕찐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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